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초상

작곡가 · 낭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

생애
1825–1899
태어난 곳
오스트리아 빈
시대
낭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이야기

1844년 가을, 빈 교외 히칭의 한 무도회장. 열아홉 살 청년이 자기 악단을 이끌고 첫 무대에 섭니다. 같은 도시에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왈츠 악단이 있었는데, 그 악단의 지휘자는 바로 청년의 아버지였어요. 그날 밤 신문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이라며 들떠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왈츠 집안

슈트라우스 2세는 1825년 빈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빈을 휩쓴 왈츠 작곡가이자 악단 지휘자였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은행 일을 배우게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몰래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지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가 집을 떠나 다른 가정을 꾸리자, 아들은 자기 악단을 꾸려 독립했습니다. 1848년 혁명 때 아버지는 황제 편에 서서 「라데츠키 행진곡」을 썼고, 아들은 혁명가들 편에서 곡을 썼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무대에서도 정치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이듬해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두 악단을 합쳐 이끌게 되었지요.

세 형제

슈트라우스 2세에게는 동생 요제프와 에두아르트가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진 형이 쓰러지자, 원래 기술자였던 요제프가 대신 지휘를 맡으며 작곡가가 되었어요. 세 형제는 함께 빈의 무도회장을 누비며 수많은 왈츠와 폴카를 쏟아 냈습니다.

러시아의 여름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1850년대 중반부터 십여 년 동안 그는 여름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 파블롭스크의 기차역 공연장에서 연주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로 공연장은 늘 붐볐지요. 1863년에는 빈 궁정 무도회의 음악 감독이 되었고, 1867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내놓았어요. 처음엔 합창곡이었던 이 곡은 그해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관현악으로 연주되며 세계로 퍼졌습니다.

미국과 오페레타

1872년 그는 미국 보스턴의 대규모 음악 축제에 초대받아, 엄청난 수의 연주자와 합창단을 지휘했습니다. 그 뒤로는 희극 오페라인 오페레타에도 힘을 쏟았어요. 1874년 「박쥐」는 지금도 연말이면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지요. 「박쥐」는 한 남자가 친구에게 당한 망신을 갚으려고 꾸민 장난이 화려한 무도회에서 터지는 이야기예요. 웃음과 왈츠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이 작품으로, 춤곡 작곡가였던 그는 극장에서도 이름을 얻었습니다.

왈츠의 왕

그는 빈 사람들에게 '왈츠의 왕'이라 불렸습니다. 진지하기로 이름난 브람스도 그의 음악을 무척 좋아해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슈트라우스 부인이 부채에 서명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마디를 적고 그 아래에 "아쉽게도 브람스의 곡은 아님"이라고 썼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1899년 슈트라우스 2세가 일흔셋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빈의 거리는 그를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전합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조용한 서주와 다섯 개의 왈츠, 마무리로 된 연주회용 왈츠예요.

쿵-짝-짝의 세 박자 위로 선율이 미끄러지듯 흐르는 동안, 왈츠는 같은 박자를 지키면서도 매번 다른 빛깔로 춤춥니다. 빈 사람들이 왜 이 음악에 맞춰 밤새 춤추었는지 느껴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경쟁자이자 왈츠의 선배.
  • 동생 요제프와 에두아르트함께 악단을 이끈 형제들.
  • 요하네스 브람스그의 왈츠를 아낀 친구.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같은 길을 걸어, 결국 아버지를 넘어섰습니다. 부모의 직업을 자녀가 이어받거나, 부모와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흔하지요.

부모가 이미 성공한 분야에서 자녀가 같은 길을 걸을 때, 그것은 유리한 출발일까요, 아니면 넘기 어려운 그림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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