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그 이야기
1858년 여름, 노르웨이 베르겐의 한 집에 이름난 손님이 찾아옵니다. 노르웨이가 낳은 바이올린 거장 올레 불이었어요. 그는 열다섯 살 소년의 피아노 연주와 작은 곡들을 듣고는, 부모에게 이 아이를 독일 라이프치히로 보내 음악을 공부시키라고 권했습니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길은 그날 정해졌습니다.
베르겐의 소년
그리그는 1843년 노르웨이 서쪽 바닷가 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아들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소년은 학교 공부보다 피아노 앞에서 자기만의 화음을 찾아 헤매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합니다.
라이프치히 유학
올레 불의 권유로 열다섯 살 그리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엄격한 독일식 수업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그는 훗날 그 시절을 그리 좋게 기억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공부 중에 늑막염을 크게 앓아, 한쪽 폐가 상해 평생 숨쉬기 불편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곳에서 슈만과 멘델스존의 음악을 깊이 익혔지요.
노르웨이의 목소리를 찾아
유학을 마친 그리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젊은 노르웨이 작곡가 리카르드 노르드라크를 만났습니다. 노르드라크는 노르웨이 사람이라면 노르웨이의 민요와 춤에서 음악을 찾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했어요. 이 만남은 그리그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노르드라크는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뜻은 그리그의 평생 음악 속에 남았지요.
니나와 첫 성공
1867년 그리그는 사촌이자 뛰어난 가수인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습니다. 니나는 평생 그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이었어요. 이듬해 딸 알렉산드라가 태어났고, 그해 여름 그는 피아노 협주곡을 썼습니다. 하지만 딸은 돌을 갓 넘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두 사람은 그 뒤로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페르 귄트와 서정 소품
1874년 극작가 입센의 부탁으로 그리그는 「페르 귄트」의 음악을 썼습니다. '아침', '솔베이지의 노래',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는 오늘날 그의 이름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지요. 또 그는 평생에 걸쳐 짧은 피아노곡 예순여섯 곡을 열 권의 「서정 소품」으로 펴냈습니다. 노르웨이의 춤과 풍경, 일상의 장면을 담은 곡들이에요. 「결혼식 날」, 「나비」, 「작은 새」처럼 제목만 보아도 장면이 떠오르는 곡이 많아,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트롤하우겐
1885년 그리그는 베르겐 근처 바닷가 언덕에 집을 짓고 '트롤하우겐', 곧 트롤의 언덕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는 집 아래 물가에 작은 작업 오두막을 두고 그곳에서 곡을 썼어요. 유럽 곳곳을 다니며 연주하고 지휘하다가 1907년 베르겐에서 예순넷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니나는 트롤하우겐의 바위 무덤에 함께 잠들어 있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페르 귄트」 중 '아침', '솔베이지의 노래',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
-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1악장과 3악장.
짧은 극음악과 큰 협주곡을 이어 들으면, 어느 곡에서나 노르웨이 민요의 소박한 가락과 춤의 리듬이 들려옵니다.
함께한 사람들
- 올레 불그리그를 라이프치히로 보내라고 부모를 설득한 바이올린 거장.
- 리카르드 노르드라크노르웨이의 소리를 찾으라고 일깨운 친구.
- 니나 그리그아내이자 그의 노래를 부른 가수.
- 헨리크 입센「페르 귄트」의 음악을 맡긴 극작가.
함께 생각해 볼 질문
그리그는 외국에서 배운 음악 언어로 자기 나라의 민요와 춤을 다시 썼고, 그 음악은 작은 나라 노르웨이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오늘날 작은 나라나 지역의 문화는 큰 나라의 문화에 묻히기 쉽지요.
세계화 속에서 작은 나라나 지역의 문화가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그의 곡
그리그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그리그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