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상스 이야기
1846년, 파리의 플레옐 홀. 열 살 소년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연주가 끝나자 소년은 앙코르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서른두 곡 가운데 아무 곡이나 외워서 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요. 카미유 생상스의 첫 공식 무대였습니다.
어머니와 큰이모할머니
생상스는 1835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고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소년은 어머니와 큰이모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큰이모할머니가 두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아이는 금세 놀라운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음악만이 아니라 언어와 수학, 자연 과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지요.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파리 음악원에서 오르간과 작곡을 공부한 그는 1858년 파리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스무 해 가까이 일했습니다. 그 자리는 파리에서 손꼽히는 명예로운 자리였어요. 그는 오르간 즉흥 연주로 특히 이름이 높아, 그의 연주를 들으러 일부러 성당을 찾는 음악가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때 제자 가운데 젊은 가브리엘 포레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가까운 친구로 지냈어요.
프랑스 음악을 위하여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진 뒤, 생상스는 여러 음악가와 함께 '국민음악협회'를 세웠습니다. 독일 음악에 밀리던 프랑스 작곡가들의 새 작품을 연주할 무대를 만들자는 뜻이었어요. 이 모임은 뒤에 드뷔시와 라벨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이 처음 울리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삼손과 데릴라」와 큰 슬픔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프랑스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다가, 리스트의 도움으로 1877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먼저 초연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큰 비극을 겪었어요. 어린 두 아들이 몇 주 사이에 잇달아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 뒤 결혼 생활도 무너졌습니다.
여행하는 학자
생상스는 평생 여행을 즐겼고, 특히 북아프리카 알제리를 자주 찾았습니다. 음악 말고도 천문학과 고고학,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 글을 쓰고 시집까지 냈어요. 1886년에는 웅장한 '오르간' 교향곡과 장난스러운 「동물의 사육제」를 같은 해에 썼습니다. 한쪽은 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대성당을 울리듯 장엄하고, 다른 한쪽은 친구들 앞에서 웃자고 쓴 농담 같은 곡이지요. 그는 '오르간' 교향곡을 막 세상을 떠난 리스트의 기억에 바쳤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해에 이토록 다른 두 곡을 썼다는 것이 그의 넓은 폭을 보여 줍니다. 그는 오래 살아 젊은 세대의 새 음악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그 가운데 일부에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고 해요. 1921년 그는 알제에서 여든여섯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첼로가 노래하는 우아한 곡.
-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사라사테를 위해 쓴 바이올린의 화려한 곡.
느리고 고요한 '백조'와, 스페인풍으로 변덕스럽게 춤추는 론도를 이어 들으면 생상스가 얼마나 여러 빛깔의 음악을 썼는지 알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프란츠 리스트「삼손과 데릴라」를 바이마르에서 무대에 올리도록 도운 선배.
- 가브리엘 포레제자이자 평생의 친구.
- 파블로 데 사라사테생상스가 여러 곡을 바친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생상스는 오래 살며 젊은 세대가 만든 새 음악을 지켜보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한 시대를 이끈 사람이 다음 세대의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요. 오늘날에도 세대 사이의 생각 차이는 자주 갈등이 됩니다.
앞 세대가 쌓은 경험과 뒤 세대의 새로운 시도가 부딪칠 때, 두 세대는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생상스의 곡
생상스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생상스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