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 낭만

모리츠 모슈코프스키

Moritz Moszkowski

생애
1854–1925
시대
낭만

모슈코프스키 이야기

1924년 12월, 뉴욕 카네기 홀. 무대 위에 피아노가 여러 대 놓이고, 이름난 피아니스트들이 차례로 자리에 앉습니다. 이 연주회는 파리에서 병들고 가난해진 한 작곡가를 돕기 위해 열렸어요. 한때 유럽에서 그의 곡을 치지 않는 피아노 학생이 드물 정도였던 사람, 모리츠 모슈코프스키입니다.

브레슬라우의 소년

모슈코프스키는 1854년 당시 프로이센의 도시 브레슬라우, 지금의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폴란드계 유대인 집안이었어요.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그는 드레스덴에서 공부한 뒤 베를린으로 옮겨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습니다.

베를린의 선생님

공부를 마친 모슈코프스키는 자신이 배운 베를린의 음악 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쳤습니다.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고 지휘도 했지요. 그에게 배운 사람 가운데에는 훗날 하프시코드를 되살린 연주자로 이름을 얻는 완다 란도프스카도 있었어요. 그는 바이올린도 잘 다뤄,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스페인 춤곡」

모슈코프스키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피아노 연탄곡 「스페인 춤곡」이었습니다.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치는 이 곡은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즐기기 좋았어요. 피아노가 집집마다 거실에 놓이던 시대였기에, 그의 곡은 악보로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그는 여러 악기와 관현악을 위한 곡, 오페라도 썼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손에 잡은 것은 그의 피아노 소품이었지요.

샤미나드 집안과의 인연

1884년 그는 프랑스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의 여동생 앙리에트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 1890년대 초에 끝났어요. 1892년에는 그라나다의 마지막 무어인 왕을 다룬 오페라 「보압딜」이 베를린에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페인에 대한 관심이 춤곡에서 오페라로 이어진 셈이지요.

파리로

1897년 모슈코프스키는 파리로 옮겼습니다. 그는 넉넉한 형편으로 파리에 자리 잡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영국 지휘자 토머스 비첨도 그에게 관현악 쓰는 법을 배웠다고 전합니다. 그의 연습곡들은 피아노 학생들이 손가락을 다듬는 교재로 널리 쓰였지요.

잃어버린 재산

그런데 제1차 세계 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독일과 폴란드, 러시아의 증권에 넣어 두었는데, 전쟁으로 그 가치가 사라져 버렸어요. 새로운 음악이 유행하면서 그의 곡을 찾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병까지 얻은 그를 돕기 위해 1924년 뉴욕에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회를 열어 큰돈을 모았지만, 그는 이듬해 1925년 3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연습곡 다장조오른손이 쉬지 않고 반짝이는 음형을 이어 가는 짧은 연습곡이에요.
  • 연습곡 가단조같은 연습곡집에 들어 있는, 단조의 어두운 빛깔을 띤 곡이에요.

두 곡은 모두 「20개의 연습곡」 작품 91에 들어 있습니다. 평음재의 두 녹음은 같은 사람이 올린 것이라, 이어서 들으면 장조와 단조의 빛깔 차이가 또렷하게 느껴져요. 손가락 연습을 위해 쓴 곡이지만, 들을 때는 한 가지 움직임을 끝까지 밀고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화음을 바꾸어 가는 솜씨를 따라가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세실 샤미나드처형이자 프랑스의 작곡가·피아니스트.
  • 완다 란도프스카베를린에서 그에게 배운 건반 연주자.
  • 토머스 비첨파리에서 그에게 관현악을 배운 영국 지휘자.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모슈코프스키는 한때 집집마다 악보가 놓일 만큼 인기 있었지만, 전쟁과 유행의 변화로 재산과 청중을 함께 잃었습니다. 그리고 동료 음악가들이 그를 돕기 위해 무대에 섰지요.

오늘날에도 한때 인기를 누리던 예술가가 어려움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동료와 사회는 그런 예술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슈코프스키의 곡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모슈코프스키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