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초상

작곡가 · 20세기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Alexander Scriabin

생애
1872–1915
시대
20세기

스크랴빈 이야기

1911년 3월, 모스크바의 한 연주회장. 무대에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있고, 악보에는 건반을 누르면 소리 대신 색깔 빛이 나오도록 생각한 이상한 악기의 자리가 따로 적혀 있었습니다. 작곡가는 음마다 색깔이 보인다고 말하곤 했어요.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입니다.

고모 손에서 자란 아이

스크랴빈은 187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그가 한 살 무렵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교관이던 아버지는 외국에서 일했어요. 아이는 고모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고모에게 피아노를 배운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좋아해, 피아노에 입을 맞출 만큼 아꼈다고 전합니다.

사관학교와 음악원

집안 전통에 따라 그는 모스크바의 사관학교에 들어갔지만, 음악 공부를 놓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선생 즈베레프에게 배웠는데, 같은 선생 아래에는 라흐마니노프도 있었어요. 1888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고, 1892년 피아노 과에서 금메달을 받으며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라흐마니노프는 더 큰 금메달을 받았지요.

다친 오른손

음악원 시절, 그는 어려운 곡을 지나치게 연습하다 오른손을 다쳤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앞날이 흔들리는 일이었어요. 그는 그 시기에 왼손만으로 치는 「전주곡과 야상곡」을 썼습니다. 다행히 손은 회복되었고, 그는 자기 곡을 직접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섰습니다.

쇼팽의 길에서

젊은 스크랴빈은 쇼팽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출판업자 벨랴예프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악보를 내 주며 연주 여행을 도왔어요. 1897년에 나온 「24개의 전주곡」 작품 11은 쇼팽처럼 스물네 개의 조를 모두 돌며 쓴 곡집입니다. 같은 해 그는 피아니스트 베라 이사코비치와 결혼했고, 이듬해부터 몇 해 동안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빛과 소리의 꿈

1900년대에 들어 스크랴빈의 음악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철학과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 음악이 사람의 정신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어요.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어 첫 가정을 떠나 타티야나 슐뢰체르와 새 삶을 꾸렸지요. 1908년 관현악곡 「법열의 시」를, 1910년에는 「프로메테우스」를 완성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악보에는 색깔 빛을 비추는 건반 악기의 파트가 따로 적혀 있었어요.

끝내지 못한 「신비극」

그의 마지막 꿈은 음악과 춤, 빛, 향기까지 하나로 묶어 히말라야에서 공연할 거대한 작품 「신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1915년 그는 입술에 난 종기가 감염으로 번져 마흔세 살에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뒤 라흐마니노프는 스크랴빈의 곡만으로 연주회를 열며 친구를 기렸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전주곡 마장조「24개의 전주곡」 작품 11의 아홉째 곡으로, '안단티노', 조금 느리게 흐르는 짧은 곡이에요.

1분 반 남짓한 곡이지만, 화음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옮겨 가는 모습에서 젊은 스크랴빈이 쇼팽에게 배운 것이 들립니다. 훗날 빛과 소리를 하나로 묶으려 한 작곡가가 처음 출발한 자리가 어디였는지 생각하며 들어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같은 선생 아래에서 배운 동창이자 맞수.
  • 미트로판 벨랴예프그의 악보를 펴내고 연주 여행을 도운 출판업자.
  • 류보피 스크랴비나그를 길러 준 고모이자 첫 피아노 선생님.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스크랴빈은 소리마다 색깔이 보인다고 말했고, 음악과 빛을 함께 쓰는 작품을 꿈꾸었습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것은 다르지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여러분은 색깔이나 장면, 냄새 같은 것이 떠오르나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감각을 하나의 작품으로 함께 나누는 일은 가능할까요?

스크랴빈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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