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푸치니의 악보

작곡가 · 낭만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생애
1858–1924
태어난 곳
이탈리아 루카
시대
낭만

푸치니 이야기

1876년, 열일곱 살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고향 루카를 떠나 피사까지 걸어갑니다. 수십 킬로미터 길이었어요. 그곳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되었거든요. 그 밤 무대를 본 소년은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아니라 오페라 작곡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합니다. 자코모 푸치니입니다.

다섯째 대의 음악가

푸치니는 1858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도시 루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루카 대성당의 음악을 맡아 온 음악가 집안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여러 아이를 키우며 아들을 음악가로 길러 내려 애썼습니다. 소년은 교회에서 오르간을 치며 가족을 도왔지요.

밀라노의 가난한 학생

스물한 살 무렵 푸치니는 어머니와 친척의 도움, 그리고 왕비가 마련한 장학금으로 밀라노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오페라 작곡가 아밀카레 폰키엘리에게 배우며 몹시 가난하게 지냈어요. 친구들과 방 하나를 나눠 쓰고 끼니를 걱정하던 이 시절의 기억은 훗날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인 「라 보엠」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고 하지요.

첫 성공에서 「라 보엠」까지

1893년 오페라 「마농 레스코」가 크게 성공하며 푸치니는 베르디의 뒤를 이을 작곡가로 떠올랐습니다. 1896년 토리노에서 젊은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초연한 「라 보엠」은 처음엔 평론가들의 반응이 엇갈렸지만, 곧 세계에서 손꼽히게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되었어요. 1900년에는 로마에서 「토스카」를 올렸습니다.

「나비 부인」의 실패와 부활

1904년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나비 부인」은 관객의 야유 속에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푸치니는 곧 공연을 거두어들이고 작품을 고쳐 썼어요. 몇 달 뒤 고쳐 쓴 판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 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실패한 작품을 버리지 않고 다시 다듬은 것이지요.

호숫가의 집

푸치니는 토스카나의 호숫가 마을 토레델라고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사냥을 무척 좋아했고, 새로 나온 자동차와 모터보트에도 열광했어요. 1903년에는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쳐 오랫동안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1918년에는 성격이 서로 다른 세 편의 단막 오페라 「일 트리티코」를 뉴욕에서 초연했어요.

끝내지 못한 「투란도트」

말년의 푸치니는 중국의 공주 이야기인 오페라 「투란도트」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목에 생긴 암을 치료하러 벨기에 브뤼셀에 갔다가 1924년 예순다섯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 장면은 끝내지 못한 채였습니다. 1926년 초연에서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쓴 마지막 대목에 이르자 연주를 멈추고, 작곡가가 여기서 펜을 놓았다고 관객에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하나뿐인 코미디 오페라 속 서정적인 노래.

푸치니의 비극 오페라들은 눈물을 쏟게 하지만, 이 노래는 코미디 속에서 웃음과 다정함을 함께 품고 있어요. 짧은 2분 안에 그가 얼마나 선율을 잘 쓰는 사람이었는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함께한 사람들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라 보엠」과 「투란도트」를 초연한 지휘자.
  • 아밀카레 폰키엘리밀라노 음악원의 스승.
  • 출판인 줄리오 리코르디젊은 푸치니를 믿고 오래 후원한 사람.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나비 부인」은 첫 무대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푸치니는 작품을 버리지 않고 고쳐 다시 무대에 올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 번의 실패를 곧 끝으로 여기거나,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도 하지요.

한 번 실패한 사람과 일에 다시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는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생애 위의 곡들

점 하나가 평음재에 실린 곡 하나예요. 점을 누르면 그 곡으로 갑니다. 연도는 작곡·완성·출판·초연 가운데 확인된 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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