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초상

작곡가 · 낭만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생애
1873–1943
시대
낭만

라흐마니노프 이야기

1917년 12월, 눈 덮인 러시아 국경. 마흔넷의 작곡가가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작은 가방 몇 개만 들고 기차에 오릅니다.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힌 지 몇 주 뒤였어요. 그는 짧은 연주 여행을 떠난다고 했지만, 그 뒤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입니다.

기울어 가는 집안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러시아 노브고로드 근처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재산을 잘 지키지 못해 집안은 영지를 하나씩 잃었고, 결국 부모도 헤어졌어요. 할머니와 함께 다니던 교회의 종소리와 성가는 소년의 귀에 깊이 남았다고 전합니다.

엄격한 스승

어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다녔지만 공부를 게을리해 성적이 나빴습니다. 사촌 형이자 리스트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실로티의 권유로, 그는 모스크바의 엄한 피아노 교사 니콜라이 즈베레프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며 배웠어요. 새벽부터 연습하는 혹독한 생활 속에서 그의 실력은 빠르게 자랐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금메달로 졸업했어요. 졸업 작품으로 쓴 단막 오페라 「알레코」는 차이콥스키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전주곡과 실패

열아홉 살 무렵 쓴 피아노 전주곡 올림다단조는 큰 인기를 얻어, 그 뒤 평생 연주회마다 이 곡을 쳐 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897년 교향곡 1번 초연이 혹평을 받자 그는 깊이 무너져, 몇 해 동안 큰 곡을 쓰지 못했어요. 의사 니콜라이 달의 치료를 받고 다시 일어나 1901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했지요.

모스크바의 지휘자

이듬해 그는 사촌 나탈리야 사티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지휘자로도 일했고, 교향곡 2번과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썼어요. 여름이면 시골 영지 이바노프카에서 지내며 곡을 썼는데, 그곳은 그가 가장 사랑한 곳이었습니다.

망명과 무대

러시아를 떠난 뒤 라흐마니노프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피아니스트로 연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미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다른 작곡가들의 곡까지 새로 익혀야 했지요. 그는 그 시대에 손꼽히는 피아니스트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작곡할 시간은 크게 줄었어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이 시기에 쓴 몇 안 되는 큰 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지막

말년에 그는 스위스 호숫가에 집을 짓고 여름을 보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1943년 미국 시민이 되었고, 그해 3월 캘리포니아에서 일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마지막까지 고향 러시아를 그리워했다고 전합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과 2악장, 「보칼리즈」.

종처럼 울리는 협주곡의 첫 화음과, 가사 없이 노래하는 「보칼리즈」를 이어 들어 보세요. 러시아의 종소리와 노래가 그의 음악 깊은 곳에 늘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니콜라이 즈베레프함께 살며 엄격하게 가르친 피아노 스승.
  • 알렉산드르 실로티사촌 형이자 피아니스트. 그를 이끌고 후원했어요.
  • 니콜라이 달무너진 그를 다시 일으킨 의사. 협주곡 2번을 바쳤습니다.
  • 아내 나탈리야평생 곁을 지킨 사촌이자 피아니스트.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라흐마니노프는 혁명 뒤 고향을 떠나야 했고, 가족을 지키려고 작곡보다 연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망명한 사람들은 새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재능의 일부를 내려놓기도 하지요. 오늘날에도 많은 난민 전문가가 새 나라에서 원래 일을 하지 못합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새 나라에서 자기 재능과 경험을 다시 살릴 수 있으려면, 받아들이는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생애 위의 곡들

점 하나가 평음재에 실린 곡 하나예요. 점을 누르면 그 곡으로 갑니다. 연도는 작곡·완성·출판·초연 가운데 확인된 해예요.

1873 태어남1943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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