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콥스키 이야기
1877년부터 열네 해 동안, 두 사람은 천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작곡가,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해마다 큰돈을 보내 준 부유한 미망인 나데즈다 폰 메크였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고, 끝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이야기입니다.
공무원에서 음악가로
차이콥스키는 1840년 러시아 우랄 지방의 광산 도시 봇킨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광산 기술자였어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가족은 그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는 학교를 마치고 법무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지요.
그러다 1862년, 새로 문을 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웠습니다. 스물두 살, 늦은 출발이었어요. 졸업 뒤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 화성학을 가르치며 곡을 썼습니다.
폰 메크 부인
1870년대 후반 차이콥스키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1877년 서둘러 한 결혼이 몇 주 만에 무너지며 그는 깊이 괴로워했어요. 바로 그 무렵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보내 준 연금 덕분에 그는 교수 일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지요. 교향곡 4번은 그녀에게 바쳐졌습니다.
1890년 폰 메크 부인은 갑자기 후원을 끊었고, 편지도 멈췄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아요. 차이콥스키는 돈보다 그 우정이 끊긴 것을 더 가슴 아파했다고 전합니다.
발레와 교향곡
차이콥스키는 발레 음악을 단순한 춤 반주에서 교향곡처럼 깊은 음악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세 편은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게 자주 공연되는 발레예요. 그는 또 교향곡 여섯 곡과 피아노 협주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남겼습니다.
「예브게니 오네긴」
그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시킨의 운문 소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시골 소녀 타티야나가 냉소적인 도시 청년 오네긴에게 밤새 편지를 쓰는 장면은 이 오페라의 한가운데예요. 차이콥스키는 화려한 무대보다 인물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 해서, 첫 무대를 큰 극장이 아니라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들에게 맡겼습니다. 1879년의 일이에요.
세계 무대로
그는 러시아 음악가로는 드물게 유럽과 미국에서 지휘자로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1891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의 개관 무대에서 지휘했어요. 1893년 10월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직접 지휘해 초연했고, 아흐레 뒤 쉰셋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식적인 원인은 콜레라였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 요정의 춤'음악 여행 열째 정거장. 첼레스타가 처음 내는 맑은 소리를 들어 보세요.
- '꽃의 왈츠', 「백조의 호수」 정경, 교향곡 6번 '비창' 4악장, 피아노 협주곡 1번, '안단테 칸타빌레'.
함께한 사람들
- 나데즈다 폰 메크열네 해 동안 편지로만 만난 후원자.
- 니콜라이 루빈시테인모스크바 음악원을 세운 피아니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엔 혹평했지만 나중에는 즐겨 연주했어요.
- 동생 모데스트형의 전기를 쓰고 '비창'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전하는 사람.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차이콥스키는 한 사람의 후원 덕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그 후원이 갑자기 끊기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예술가의 생활이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가 몇몇 후원자나 기업에 기대어 활동합니다.
예술가의 생계가 한 사람이나 한 기업의 선택에 따라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의 지원이 필요할까요?
차이콥스키의 곡
차이콥스키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