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무대에서 실패한 발레가 백조로 날아오르기까지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모스크바 초연에서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이 발레가 오늘의 모습을 얻은 것은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프가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고, 현악기가 떨리는 안개를 깝니다. 그 위로 오보에가 쓸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부르지요. 달빛 비치는 호숫가, 마법에 걸린 백조들이 물 위를 미끄러져 오는 장면입니다. 이 선율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하얀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들을 떠올려요. 그런데 이 발레가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첫 발레, 첫 실패
1875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은 차이콥스키에게 발레 음악을 부탁했습니다. 그때까지 발레 음악은 춤을 위한 반주 정도로 여겨졌고, 이름난 교향곡 작곡가가 맡는 일은 드물었어요. 차이콥스키는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교향곡처럼 짜임새 있고 깊은 음악을 썼습니다.
1877년 초연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안무는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했고, 무대와 연주도 음악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해요. 오히려 발레 음악치고 너무 복잡하고 교향곡 같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발레는 몇 해 동안 무대에 오르다가 사라졌어요.
세상을 떠난 뒤에 날아오른 백조
차이콥스키는 그 뒤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호두까기 인형」으로 발레 음악의 대가가 되었지만, 「백조의 호수」가 다시 무대에서 빛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1893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죽음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이 발레를 새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휘자 리카르도 드리고가 음악을 손보았고, 1895년 새로운 「백조의 호수」가 무대에 올랐어요. 특히 이바노프가 만든 호숫가 장면, 백조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하얀 군무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백조의 호수」는 대부분 이 1895년 판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백조와 흑조
이 발레에서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 밤에만 사람이 되는 공주 오데트와, 그녀를 흉내 내는 마법사의 딸 오딜을 한 발레리나가 함께 추는 전통도 이 무렵 자리를 잡았습니다. 순결한 흰 백조와 유혹하는 검은 백조를 한 사람이 오가며 춤추는 것은 지금도 발레리나에게 손꼽히게 어려운 시험이지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백조의 호수」는 첫 무대가 실패한 탓에 한동안 사라졌다가,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쳐 걸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연이나 책, 영화를 처음 반응만으로 빠르게 평가하고 잊어버리곤 하지요.
첫 평가만으로 어떤 작품이나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일은 어떤 기회를 빼앗을까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두 번째 기회를 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차이콥스키 이야기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