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메타나 이야기
현악 사중주가 밝게 흐르다가, 갑자기 바이올린이 아주 높은 음 하나를 길게 끕니다. 귀를 찌르는 듯한 그 소리는 작곡가가 귀가 먼 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들었다는 소리였어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자기 삶을 그린 현악 사중주에 그 소리까지 그대로 적어 넣었습니다.
양조장 집 아들
스메타나는 1824년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 리토미슐에서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여섯 살에 이미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고 전해요. 그 무렵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였고, 학교와 교양 있는 집안에서는 주로 독일어를 썼습니다. 스메타나도 독일어를 쓰며 자랐어요.
프라하의 가난한 청년
십 대 후반 그는 음악가가 되려고 프라하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돈이 넉넉지 않아, 귀족 집안의 피아노 선생으로 일하며 힘들게 공부했어요. 1848년 혁명의 열기 속에서 그는 프라하에 작은 음악 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때 그는 존경하던 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고, 리스트는 그의 곡을 출판사에 소개해 주었지요.
스웨덴에서 보낸 몇 해
1856년 스메타나는 스웨덴 예테보리로 가서 지휘자이자 교사로 다섯 해쯤 일했습니다. 그 사이 큰 슬픔도 겪었어요. 어린 딸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고, 첫 아내 카테르지나도 병으로 잃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언젠가 체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쓰겠다는 마음을 키웠지요.
체코 말로 된 오페라
1860년대 초 프라하로 돌아온 스메타나는 체코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 한가운데 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체코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야 문법부터 다시 공부해야 했어요. 1866년 체코 말로 된 희극 오페라 「팔려 간 신부」는 큰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그는 프라하 임시극장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들리지 않는 귀로
1874년 스메타나는 몇 달 사이에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휘자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지요. 들리지 않는 귀 안에서는 높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그를 몹시 괴롭혔다고 해요.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여섯 곡짜리 관현악 연작 「나의 조국」을 썼고, 자기 삶을 돌아보는 현악 사중주 「나의 생애에서」를 남겼습니다. 그 사중주 끝 무렵의 높은 음이 바로 그의 귀에서 울리던 소리였어요.
마지막
말년에 그는 기억과 정신마저 흐려지는 병을 앓았고, 1884년 프라하의 요양 시설에서 예순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체코 음악을 세운 사람을 배웅했어요. 오늘날 프라하의 음악 축제는 그를 기리며 문을 엽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나의 조국」 중 '블타바'두 샘물에서 시작해 프라하를 지나 흘러가는 강의 여행.
곡을 들으며 장면마다 무엇이 지나가는지 떠올려 보세요. 사냥의 뿔피리, 시골 결혼식, 달빛 아래 요정, 거센 급류, 그리고 프라하의 옛 성까지, 그가 사랑한 땅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함께한 사람들
- 프란츠 리스트젊은 스메타나의 곡을 출판사에 소개하며 도운 사람.
- 첫 아내 카테르지나젊은 시절을 함께한 피아니스트.
- 안토닌 드보르자크스메타나가 이끈 극장의 비올라 연주자였다가, 체코 음악을 이어받은 후배.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스메타나는 지배를 받던 시절 독일어를 쓰며 자랐지만, 어른이 되어 자기 민족의 말을 다시 배우고 그 말로 음악을 썼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역 언어와 소수 민족의 말이 큰 나라의 말에 밀려 사라지고 있지요.
사라져 가는 언어를 지키는 일은 그 말을 쓰는 사람들만의 몫일까요, 아니면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문화일까요?
생애 위의 곡들
점 하나가 평음재에 실린 곡 하나예요. 점을 누르면 그 곡으로 갑니다. 연도는 작곡·완성·출판·초연 가운데 확인된 해예요.
스메타나의 곡
스메타나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스메타나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