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 숨은 이야기 ·

작곡가 자신은 듣기 싫다고 했던 트롤의 행진

그리그는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를 쓴 뒤 친구에게, 자기 귀로도 견디기 힘든 곡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곡이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그리그 · 2분 읽기

에드바르 그리그의 초상

낮은 곳에서 바순과 첼로가 살금살금 걷기 시작합니다. 같은 짧은 가락을 한 번, 또 한 번. 그런데 되풀이할 때마다 조금씩 빨라지고 커져요. 마침내 오케스트라 전체가 미친 듯 내달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예요.

입센의 부탁

1874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젊은 작곡가 그리그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의 극시 「페르 귄트」를 무대에 올리려는데, 거기에 쓸 음악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그리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의 부탁을 받아들였지만,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극은 1876년 노르웨이 수도의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어요.

「페르 귄트」의 주인공 페르는 허풍과 거짓말을 일삼는 시골 청년입니다. 그는 떠돌다가 산속 트롤 왕국에 들어가 마왕의 딸과 결혼하려고 해요. 그 대가로 트롤처럼 살겠다고, 꼬리를 달고 눈까지 트롤의 눈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할 뻔하지요. 이 곡은 트롤들이 페르를 둘러싸고 점점 흥분해 덤벼드는 장면의 음악입니다.

쇠똥 냄새가 난다는 고백

그런데 그리그는 이 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왕의 궁전 장면을 위해 쓴 곡이 자기 귀로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지경이라고 적었어요. 쇠똥 냄새와 지나친 노르웨이 자랑, 트롤 같은 자기만족이 풀풀 풍긴다면서요.

자기 작품을 이렇게 흉보다니 놀랍지요? 그런데 바로 그 '트롤다움'이 이 곡의 매력이 되었습니다. 투박하고 고집스럽게 같은 가락을 되풀이하며 몰아치는 힘은,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거든요. 오늘날 이 곡은 영화와 광고, 게임에 셀 수 없이 쓰이며 그리그의 곡 가운데 손꼽히게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습니다.

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상 하나의 짧은 가락이 계속됩니다. 처음 낮은 악기에서 시작한 가락이 점점 높은 악기로 옮겨 가고, 빠르기와 크기가 계속 올라가요. 맨 끝에서 트롤들의 외침처럼 오케스트라가 터지는 순간까지,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껴 보세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트롤 왕국에서 페르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기 눈과 생각까지 트롤처럼 바꾸겠다고 약속하려 합니다. 무리에 끼기 위해 자기 생각을 버리고 그 무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일은 오늘날 학교와 회사, 인터넷 공간에서도 흔하지요.

어떤 무리에 속하고 싶은 마음과 나다운 생각을 지키는 일이 부딪칠 때, 우리는 어디까지 맞추고 어디서 멈추어야 할까요?

에드바르 그리그의 초상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그리그 이야기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