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 숨은 이야기 ·

전쟁에 진 도시를 위로하려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처음에 가사가 붙은 남성 합창곡이었다. 전쟁에 진 빈의 우울을 달래려던 곡은 첫 무대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2분 읽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초상

현악기가 아주 여리게 떨리고, 그 위로 호른이 동이 트듯 조용히 올라옵니다. 그리고 왈츠가 시작되지요. 쿵-짝-짝, 쿵-짝-짝. 새해 첫날이면 빈의 음악회장에서 어김없이 울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원래 노래였어요.

패전의 겨울

1866년 여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크게 졌습니다. 빈 사람들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어요. 그해 겨울, 빈 남성 합창단이 '왈츠의 왕'이라 불리던 슈트라우스에게 사육제 무대에서 부를 새 곡을 부탁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합창단을 위해 왈츠를 썼고, 합창단원 한 사람이 가사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는 강의 아름다움보다, 우울한 시절을 웃음으로 넘기자는 풍자에 가까웠다고 해요. 1867년 2월 첫 무대의 반응은 열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큰 실패도 아니었지만, 오늘날의 명성을 짐작하기는 어려웠지요.

파리에서 다시 태어나다

같은 해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만국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곳에서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노래 없이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했어요. 그러자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왈츠는 파리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곧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 나갔어요. 악보도 엄청나게 팔렸다고 전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용 가사는 그보다 한참 뒤에 다른 사람이 새로 쓴 것입니다. 그리고 곡 이름의 '푸른 도나우'라는 표현은 한 시인의 시 구절에서 왔어요. 실제 도나우 강물은 대개 푸르기보다 흐린 빛이라는 농담도 따라다니지요.

부채에 적힌 한 줄

이 곡에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작곡가 브람스가 슈트라우스의 아내 아델레가 내민 부채에 서명하면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마디를 적고 그 아래 '안타깝게도 브람스의 곡이 아님'이라고 썼다는 이야기예요. 진지하기로 이름난 브람스도 이 왈츠만은 부러워했다는 뜻이겠지요. 두 사람은 실제로 서로를 존중한 친구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이 왈츠는 전쟁에 진 도시 사람들의 우울을 달래려고 쓰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큰 반응이 없다가, 전쟁과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축제에서 사랑받으며 세상에 퍼졌지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노래가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아픔을 잊게 해 현실을 덮어 버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음악과 오락은 위로일까요, 아니면 마주해야 할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일일까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초상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요한 슈트라우스 2세 이야기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