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의 초상

작곡가 · 20세기

에릭 사티

Erik Satie

생애
1866–1925
태어난 곳
프랑스 옹플뢰르
시대
20세기

사티 이야기

1925년, 한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 친구들이 그의 작은 방문을 엽니다. 이십 년 넘게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한 방이었어요. 그 안에는 고장 난 피아노 두 대가 겹쳐 놓여 있고, 우산이 잔뜩 쌓여 있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남아 있었다고 전합니다. 에릭 사티의 방이었어요.

옹플뢰르의 소년

사티는 1866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바닷가 마을 옹플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뒤 한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에서 자랐고, 그곳 오르가니스트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어요. 십 대에 파리로 와서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게으른 학생

음악원에서 사티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를 재능은 있지만 게으른 학생이라 여겼어요. 그는 결국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이 혼자 옛 교회 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파고들며, 남들과 전혀 다른 소리를 찾고 있었지요.

몽마르트르의 피아니스트

1880년대 후반 사티는 파리 몽마르트르의 이름난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피아노를 치며 시인, 화가들과 어울렸습니다. 1888년 「짐노페디」, 1890년 무렵 「그노시엔」을 썼어요. 이 무렵 그는 드뷔시를 만나 평생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신비주의 종교 모임에 빠져 그 모임을 위한 음악을 쓰기도 하고, 스스로 교회를 세웠다고 선언하기도 하는 별난 사람이었어요.

아르쾨유와 늦은 공부

1898년 사티는 파리 남쪽 교외 아르쾨유의 작은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 그는 거의 매일 파리까지 몇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며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고 친구들을 만났다고 전해요. 늘 같은 회색 벨벳 양복과 중절모, 우산 차림이었다고 하지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녔다고 해요.

그리고 서른아홉 살이던 1905년, 그는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스콜라 칸토룸이라는 음악 학교에 들어가 대위법을 처음부터 착실히 배웠어요. 주위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는 몇 해 동안 꾸준히 공부해 졸업장까지 받았습니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가 젊은 학생들 틈에 앉아 기초 연습 문제를 푸는 모습은 그 시절에도 무척 낯선 풍경이었을 거예요. 그 뒤 사티의 음악은 더 단단하고 명료해졌습니다.

「파라드」와 젊은 음악가들

1917년 사티는 시인 장 콕토, 화가 피카소, 러시아 발레단과 함께 발레 「파라드」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타자기 소리와 사이렌이 들어간 이 작품은 큰 소동을 일으켰어요. 그 뒤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은 사티를 따르며 새 음악을 찾았습니다. 그는 또 사람들이 듣지 않고 흘려들어도 되는 '가구 음악'을 생각해 내기도 했지요. 오늘날의 배경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생각이었어요. 사티는 1925년 파리에서 쉰아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짐노페디」 1번느리고 괴롭게 연주하라는 지시어가 붙은 곡.
  • 「그노시엔」 1번마디줄 없는 악보의 신비로운 곡.

두 곡을 이어 들으면, 덜어 내고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티의 생각이 귀로 느껴집니다.

함께한 사람들

  • 클로드 드뷔시평생의 친구. 「짐노페디」 두 곡을 관현악으로 옮겼어요.
  • 장 콕토「파라드」를 함께 만든 시인.
  • 파블로 피카소「파라드」의 무대와 의상을 맡은 화가.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사티는 음악원에서 게으르다는 평을 받았지만, 서른아홉에 스스로 다시 학교에 들어가 기초부터 배웠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공부를 마쳐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배움에 정해진 나이가 있어야 할까요? 늦은 나이에 다시 배우려는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손으로 쓴 악보

사티의 손글씨 악보 · 「코카뉴 행진곡」 (1919)
사티의 손글씨 악보 · 「코카뉴 행진곡」 (1919)

사티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사티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