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홀스트의 초상

작곡가 · 20세기

구스타브 홀스트

Gustav Holst

생애
1874–1934
태어난 곳
잉글랜드 첼트넘
시대
20세기

홀스트 이야기

런던의 한 여학교, 방음이 된 작은 음악실. 주말과 방학이면 이 방에서 음악 선생님이 혼자 곡을 씁니다. 바로 그 방에서 화성, 금성, 목성의 음악이 태어났어요. 구스타브 홀스트는 평생 이 학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첼트넘의 소년

홀스트는 1874년 영국 첼트넘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스웨덴에서 건너온 음악가 집안으로, 아버지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교회 오르간을 쳤어요.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그는 몸이 약하고 눈이 나빴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지만, 손의 신경통 때문에 그 꿈은 이룰 수 없었어요.

트롬본 연주자

대신 홀스트는 런던 왕립 음악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며 트롬본을 배웠습니다. 졸업 뒤에는 한동안 극장과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을 불며 생계를 꾸렸지요. 오케스트라 안에서 악기들의 소리를 직접 겪은 경험은 훗날 그의 관현악 솜씨가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평생의 친구 랠프 본 윌리엄스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새 곡을 먼저 보여 주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어요. 둘은 함께 잊혀 가던 영국 민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민요의 가락을 바탕으로 한 곡을 여럿 썼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별

홀스트는 인도의 옛 문학과 철학에 끌려, 원전을 직접 읽으려고 런던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리그베다의 찬가를 스스로 옮겨 노래로 만들었어요. 친구의 소개로 점성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친구들의 별자리 운세를 봐 주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이 관심이 「행성」의 씨앗이 되었지요.

세인트폴 여학교

190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홀스트는 런던의 세인트폴 여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현악 합주곡 「세인트폴 모음곡」을 쓰기도 했어요. 노동자들을 위한 야간 학교인 몰리 칼리지에서도 오래 음악을 가르치며,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는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1914년부터 그는 이 학교의 방음 음악실에서 「행성」을 썼어요.

전쟁과 그 뒤

제1차 세계 대전 중 건강 문제로 군대에 가지 못한 그는, 전쟁 끝 무렵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영국군 병사들에게 음악 교육을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 직전 독일식으로 들리는 이름의 '폰'을 떼어 냈지요. 「행성」이 큰 성공을 거두며 유명해졌지만, 그는 명성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고 해요. 1923년 지휘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뒤 건강이 나빠졌고, 1934년 수술 뒤 쉰아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행성」 중 '목성, 즐거움을 가져오는 자': 축제처럼 떠들썩하다가 가운데에서 넓고 장엄한 선율이 흐르는 곡이에요.

이 곡을 들은 뒤 「행성」의 다른 악장도 찾아 들어 보세요. 전쟁을 가져오는 화성은 다섯 박자로 무섭게 몰아치고, 평화를 가져오는 금성은 고요하게 반짝이며, 신비로운 해왕성은 멀리서 들려오는 여성 합창이 점점 사라지며 끝납니다. 한 사람이 쓴 일곱 개의 별이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랠프 본 윌리엄스평생 서로의 곡을 먼저 보여 준 친구.
  • 이모젠 홀스트딸이자 음악가. 아버지의 전기를 쓰고 작품을 정리했어요.
  • 세인트폴 여학교와 몰리 칼리지의 학생들그가 평생 함께 노래하고 연주한 사람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홀스트는 이름난 작곡가가 된 뒤에도 평생 여학교와 노동자 야간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음악이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믿었지요. 오늘날 학교에서 음악과 예술 수업은 입시 과목에 밀려 줄어들기도 합니다.

예술 교육은 소수의 재능 있는 학생을 위한 것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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