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드뷔시의 초상

작곡가 · 20세기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생애
1862–1918
태어난 곳
프랑스 생제르맹앙레
시대
20세기

드뷔시 이야기

파리 음악원의 화성학 수업. 한 학생이 피아노 앞에 앉아 교과서에서 금지한 화음들을 줄줄이 이어 칩니다. 선생님이 무슨 규칙을 따르는 거냐고 묻자, 학생은 자기 즐거움이 곧 규칙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클로드 드뷔시입니다.

생제르맹앙레의 소년

드뷔시는 1862년 파리 근교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고, 부모는 음악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아홉 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소년은 놀라운 재능을 보였고, 열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음악원에서 그는 피아노보다 작곡과 화성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보다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를 찾았지요. 십 대 후반에는 차이콥스키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 집안의 피아노 선생으로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했어요.

로마 대상과 바그너

1884년 드뷔시는 프랑스 젊은 작곡가들의 꿈이던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곳 생활을 답답해하며 예정보다 일찍 파리로 돌아왔어요. 그 무렵 많은 프랑스 음악가처럼 그도 바그너의 음악에 깊이 빠졌다가, 차츰 그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찾았습니다.

시인과 화가들 사이에서

드뷔시는 음악가보다 시인과 화가들과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시인 말라르메의 화요 모임에 드나들었고, 베를렌과 말라르메의 시에 곡을 붙였어요.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들은 자바의 가믈란 음악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894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그 결실이었어요. 박자가 녹아내리는 듯한 흐름과 빛깔 같은 화음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02년에는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로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었지요. 사람들은 그를 '인상주의' 작곡가라 불렀지만, 정작 드뷔시는 그 이름을 반기지 않았다고 해요.

바다와 전주곡

1905년 그는 관현악곡 「바다」를 내놓았고, 같은 해 딸 클로드 엠마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딸을 '슈슈'라고 부르며 무척 아꼈고, 딸을 위해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차지」를 썼어요. 1909년부터는 피아노 「전주곡」 스물네 곡을 두 권에 나누어 썼지요. 곡마다 제목을 맨 끝에 괄호로 적어, 듣는 사람이 먼저 소리를 느끼게 했습니다.

말년의 드뷔시는 암으로 오래 고생했습니다. 1918년 3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파리에 포탄이 떨어지던 무렵 그는 쉰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음악 여행 열셋째 정거장이에요.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아라베스크 1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

젊은 날의 아라베스크와 '달빛'에서 시작해 「목신의 오후」와 '아마빛 머리의 소녀'로 넘어가 보세요. 처음엔 아름답고 단정하던 소리가, 갈수록 박자와 화음의 틀에서 풀려나 공기처럼 떠다니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드뷔시가 걸어간 길이 그대로 귀에 들리는 순서예요.

함께한 사람들

  • 스테판 말라르메「목신의 오후」를 쓴 시인. 그의 화요 모임은 드뷔시에게 새로운 생각을 열어 주었어요.
  • 에릭 사티몽마르트르의 친구. 드뷔시는 사티의 「짐노페디」 두 곡을 관현악으로 옮겼습니다.
  • 딸 클로드 엠마 '슈슈'「어린이 차지」를 낳게 한 딸.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드뷔시는 정해진 규칙보다 자기 귀를 믿었고, 그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학생은 종종 '말을 안 듣는 학생'으로 여겨지지요. 규칙을 배우는 일과 규칙을 넘어서는 일은 늘 부딪칩니다.

학교가 규칙을 가르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학생의 생각을 꺾지 않으려면,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까요?

손으로 쓴 악보

드뷔시의 자필 악보 · 「마드리드」
드뷔시의 자필 악보 ·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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