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포레의 초상

작곡가 · 낭만

가브리엘 포레

Gabriel Fauré

생애
1845–1924
태어난 곳
프랑스 파미에
시대
낭만

포레 이야기

1854년,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자락에서 아홉 살 소년이 파리로 떠납니다. 소년은 어릴 때 마을 성당에 몰래 들어가 오르간을 치곤 했어요.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버지에게 아이를 음악 학교에 보내라고 권했다고 전합니다. 가브리엘 포레입니다.

피레네의 소년

포레는 1845년 프랑스 남부 파미에에서 여섯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교사를 기르는 학교의 교장이었어요. 그 학교에 딸린 작은 성당에서 소년은 오르간과 처음 만났습니다.

니데르메예르 학교

파리에서 포레가 들어간 곳은 교회 음악가를 기르는 니데르메예르 학교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열한 해 동안 오르간과 성가, 옛 교회 선법을 배웠어요. 1861년에는 생상스가 피아노 선생님으로 와서, 학생들에게 당시 새로웠던 슈만과 리스트, 바그너의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열 살 많은 선생님과 학생은 평생 친구가 되었지요.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학교를 마친 포레는 브르타뉴의 렌에서 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일했고, 1870년 전쟁 때는 군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 뒤 파리의 여러 성당을 거쳐 1877년 마들렌 성당의 합창 지휘자가 되었어요. 생계를 위해 피아노 레슨도 많이 했는데, 작곡은 주로 여름 휴가 때에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피아노와 목소리를 위한 노래를 꾸준히 써서, 「꿈을 꾼 뒤에」와 베를렌의 시에 붙인 「달빛」 같은 프랑스 가곡을 남겼어요. 1877년에는 성악가 비아르도의 딸 마리안과 약혼했지만, 몇 달 만에 파혼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레퀴엠」과 「파반」

1887년 포레는 「파반」을 썼고, 같은 무렵 「레퀴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레퀴엠」은 1888년 마들렌 성당에서 처음 연주되었어요. 그는 이 곡에서 심판의 공포를 크게 그리는 대신, 죽음을 평화로운 안식으로 노래했습니다. 그사이 그는 조각가 프레미예의 딸 마리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요.

음악원의 선생님

1896년 포레는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파리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수업에서는 라벨, 나디아 불랑제, 에네스쿠 같은 학생들이 자랐어요. 그는 학생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찾도록 이끌었다고 전합니다. 1905년에는 음악원 원장이 되어 낡은 규칙을 과감하게 고쳤습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

그런데 1900년대 초부터 포레는 귀가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음은 높게, 높은 음은 낮게 일그러져 들렸다고 해요. 그는 이 사실을 오래 숨기며 일했습니다. 1920년 음악원 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피아노 오중주와 현악 사중주를 썼고, 1924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파반」옛 궁정의 느린 춤곡 리듬 위로 플루트가 쓸쓸한 선율을 부르는 곡이에요.
  • 「시칠리안느」시칠리아 춤곡의 흔들리는 리듬을 쓴 곡으로, 1898년 연극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음악에 들어갔어요.

두 곡 모두 크게 외치지 않습니다. 같은 리듬을 조용히 되풀이하는 반주 위에서 선율이 조금씩 빛깔을 바꾸는 순간을 찾아 들어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카미유 생상스스승이자 평생의 친구.
  • 모리스 라벨음악원에서 가르친 제자.
  • 마리 프레미예조각가 에마뉘엘 프레미예의 딸이자 그의 아내.

함께 생각해 볼 질문

포레는 생계를 위해 레슨을 하며 여름에야 작곡했고, 말년에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숨기며 일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한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시간을 나눕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시간이 부족할 때, 그 일을 계속 이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포레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