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이야기
1802년 가을, 빈 근교의 시골 마을 하일리겐슈타트. 서른두 살의 작곡가가 동생들에게 보내는 긴 글을 씁니다. 귀가 점점 들리지 않아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고, 죽음까지 생각했지만 예술이 자신을 붙잡았다는 고백이었어요. 그는 이 글을 보내지 않고 평생 간직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입니다.
본의 소년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본 궁정의 악장이었고, 아버지는 궁정 가수였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모차르트 같은 신동으로 만들려고 혹독하게 피아노를 가르쳤지만, 술에 빠져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십 대의 베토벤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지요.
본에서 그는 오르가니스트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에게 배우며 바흐의 「평균율」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1792년, 스물한 살에 빈으로 떠났어요. 하이든에게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뒤 그는 다시는 본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빈의 피아니스트
빈에서 베토벤은 먼저 뛰어난 즉흥 연주로 귀족들의 응접실을 사로잡았습니다. 여러 귀족이 그를 후원했지만, 그는 누구의 하인도 되려 하지 않았어요.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 교향곡 1번과 2번이 이 무렵 나왔습니다.
그런데 1790년대 말부터 귀에서 소리가 울리고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01년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비밀을 처음 털어놓았어요. 연주자로서의 앞날이 무너지는 일이었지요.
'영웅'과 그 뒤
절망을 지나 베토벤은 더 크고 대담한 음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향곡 3번은 처음 나폴레옹을 기리려고 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표지의 헌사를 지워 버렸다고 제자 리스가 전해요. 그 뒤 교향곡 5번과 6번,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피델리오」가 이어졌습니다.
말년의 베토벤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사람들과 공책에 글을 써서 대화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동생의 아들 카를의 양육권을 두고 오랜 법정 다툼을 벌이며 몹시 지치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는 교향곡 9번과 「장엄 미사」, 마지막 현악 사중주들처럼 시대를 앞선 작품을 남겼습니다.
1827년, 빈
베토벤은 1827년 3월 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그를 배웅했다고 전해요. 횃불을 든 사람들 가운데에는 젊은 슈베르트도 있었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음악 여행 다섯째 정거장이에요.
- 교향곡 5번 1악장, 교향곡 6번 '전원' 1악장, 교향곡 7번 2악장, 교향곡 9번 4악장.
-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
초기의 '비창'과 '월광', 한가운데의 교향곡 5번과 '전원', 마지막의 교향곡 9번을 차례로 들으면, 귀가 점점 닫혀 가는 동안 음악은 오히려 더 넓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본에서 그를 가르치고 처음 세상에 소개한 스승.
- 요제프 하이든빈에서 배운 스승. 두 사람 사이는 늘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 루돌프 대공과 귀족 후원자들평생 연금을 약속하며 그가 빈에 머물도록 도운 사람들.
- 조카 카를베토벤이 아버지처럼 키우려 했지만 서로를 힘들게 했던 조카.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뒤 사람들을 피했고, 몇 해 동안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장애를 드러내면 일과 명성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몸이나 마음의 어려움을 숨기고 일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자기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말해도 일자리를 잃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일터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손으로 쓴 악보

생애 위의 곡들
점 하나가 평음재에 실린 곡 하나예요. 점을 누르면 그 곡으로 갑니다. 연도는 작곡·완성·출판·초연 가운데 확인된 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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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가 베토벤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