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의 초상

작곡가 · 낭만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생애
1797–1828
태어난 곳
오스트리아 빈
시대
낭만

슈베르트 이야기

빈의 어느 집 거실. 친구들이 모여 앉고, 안경 쓴 작은 키의 청년이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가수가 그의 새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시를 읽고, 밤늦도록 웃음이 이어지지요. 친구들은 이런 모임을 그의 이름을 따 '슈베르티아데'라고 불렀어요. 프란츠 슈베르트입니다.

학교 선생님의 아들

슈베르트는 1797년 빈 교외에서 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형에게 악기를 배웠고, 맑은 목소리 덕분에 열한 살에 궁정 예배당 소년 합창단원이 되어 기숙 학교에서 공부했어요. 그곳에서 그는 궁정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학교를 마친 뒤 그는 아버지의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했지만, 마음은 늘 작곡에 가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괴테의 시로 「물레 잣는 그레트헨」을, 이듬해 「마왕」을 썼어요. 1815년 한 해에만 백 곡이 넘는 노래를 썼다고 합니다.

친구들 속에서

슈베르트는 끝내 정해진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궁정이나 교회의 음악가 자리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어요. 그 대신 그에게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시인, 화가, 법률가, 가수인 친구들이 방을 내주고, 악보를 출판사에 소개하고, 그의 노래를 불러 주었지요. 이름난 가수 요한 미하엘 포글은 그의 노래를 널리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시를 노래로

슈베르트의 노래는 시를 읽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괴테와 실러 같은 대시인의 시는 물론, 친구들이 쓴 시에도 곡을 붙였어요. 피아노는 반주에 그치지 않고 물레 돌아가는 소리, 말 달리는 소리, 시냇물 소리를 그려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었지요.

그는 한 시인의 시 여러 편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연가곡도 썼습니다. 빌헬름 뮐러의 시로 쓴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가 대표적이에요.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받은 젊은이가 겨울 길을 홀로 걷는 「겨울 나그네」를 처음 친구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친구들은 그 어두움에 놀랐다고 전합니다.

짧고 바쁜 마지막 몇 해

1820년대 중반부터 슈베르트는 큰 병을 앓으며 건강이 크게 나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연가곡 「겨울 나그네」, 큰 교향곡, 현악 오중주,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처럼 깊이 있는 작품들을 쏟아 냈어요. 1827년에는 존경하던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횃불을 들었고, 이듬해 3월 처음이자 하나뿐인 자기 작품 공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여덟 달 뒤인 1828년 11월, 슈베르트는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베토벤 무덤 가까이에 묻혔어요. 그가 남긴 많은 곡이 수십 년 뒤에야 발견되고 출판되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도 그가 떠나고 37년이 지나서야 처음 연주되었지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피아노 오중주 '송어' 4악장음악 여행 여섯째 정거장이에요.
  • 「아베 마리아」, 세레나데(「백조의 노래」 중), 즉흥곡 3번, 교향곡 '미완성'.

노래 몇 곡과 피아노곡, 교향곡을 함께 들으면 알 수 있어요. 그는 피아노곡과 교향곡에서도 늘 노래하듯 썼습니다.

함께한 사람들

  • 요한 미하엘 포글슈베르트의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며 알린 이름난 가수.
  • 프란츠 폰 쇼버, 요제프 폰 슈파운방을 내주고 악보를 알리며 그를 도운 친구들.
  • 안젤름 휘텐브레너「미완성 교향곡」 악보를 오랫동안 간직한 친구.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슈베르트는 끝내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작곡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예술가도 정규 일자리 없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일을 오가며 작품을 만듭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작품을 이어 가는 일이 친구와 가족의 도움에만 기대야 한다면,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슈베르트의 곡

슈베르트의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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