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하이든의 초상

작곡가 · 고전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생애
1732–1809
태어난 곳
오스트리아 로라우
시대
고전

하이든 이야기

어느 날 소년 합창단원 한 명이 장난으로 앞자리 친구의 머리채를 잘랐습니다. 마침 목소리도 변해 가던 참이었지요. 소년은 결국 합창단에서 쫓겨나, 빈의 거리로 나서야 했다고 전합니다. 요제프 하이든의 이야기는 이렇게 가난하게 시작되었어요.

로라우의 소년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 동쪽 끝 마을 로라우에서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악보를 읽지 못했지만 하프를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했어요. 소년의 맑은 목소리를 알아본 친척이 여섯 살 아이를 데려가 음악을 가르쳤고, 그 뒤 그는 빈의 슈테판 대성당 소년 합창단원이 되었습니다.

거리의 음악가

목소리가 변해 합창단을 떠난 뒤, 하이든은 몇 해 동안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레슨을 하고, 거리 세레나데 악단에서 연주하며 지붕 밑 다락방에서 지냈어요. 그러면서도 혼자 작곡을 공부했지요. 한때는 이탈리아 작곡가 포르포라의 반주자 겸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작곡과 노래 가르치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궁정

1761년, 하이든은 헝가리의 대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부악장이 되었고, 곧 악장이 되었습니다. 그 뒤 거의 서른 해 동안 그는 이 가문을 위해 교향곡, 오페라, 실내악을 쓰고, 악단을 이끌었어요. 니콜라우스 공이 지은 화려한 여름 궁전 에스테르하자는 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훗날 하이든은 전기 작가에게,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을 흉내 낼 수 없었고, 그래서 독창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의 말을 남겼어요. 그는 이 시기에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의 틀을 다져, 훗날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 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모차르트와의 우정

1780년대 하이든은 스물네 살 아래인 모차르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기도 했고, 모차르트는 사중주 여섯 곡을 하이든에게 바쳤어요.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들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작곡가라는 뜻의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런던

1790년 주인 니콜라우스 공이 세상을 떠나자, 하이든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연 기획자 잘로몬의 초대로 런던에 간 그는 두 번에 걸쳐 열두 곡의 '런던 교향곡'을 선보이며 큰 환영을 받았어요. 옥스퍼드 대학은 그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었습니다.

빈의 말년

빈으로 돌아온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천지 창조」와 「사계」를 썼습니다. 1797년에는 오스트리아 황제를 위한 노래를 지었는데, 그 선율은 훗날 독일 국가의 선율이 되었어요. 1809년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한 가운데, 하이든은 일흔일곱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교향곡 45번 '고별' 마지막 악장, 교향곡 94번 '놀람' 2악장, 현악 사중주 '종달새'.

'고별'의 재치 있는 퇴장과 '놀람'의 장난스러운 큰 소리를 들으면, 하이든이 듣는 사람을 얼마나 즐겁게 놀라게 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공거의 서른 해 동안 하이든을 고용한 주인.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나이를 넘어선 친구.
  • 요한 페터 잘로몬하이든을 런던으로 초대한 공연 기획자.
  • 루트비히 판 베토벤빈에서 하이든에게 배운 젊은 제자.

함께 생각해 볼 질문

하이든은 서른 해 가까이 한 귀족의 궁정에서 일하며 하인의 옷을 입어야 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 런던에서 수많은 시민 청중에게 박수를 받았지요.

안정된 일자리에 머무는 것과 자유롭게 자기 길을 찾아 나서는 것 가운데, 사람이 자기 재능을 꽃피우기에 더 나은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 선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을까요?

하이든의 곡

하이든의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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