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벨 이야기
한 작곡가는 그를 두고 스위스 시계공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까지 맞물리게 하듯,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정밀하게 맞추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시계 안에는 늘 따뜻한 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모리스 라벨입니다.
바스크의 바닷가
라벨은 1875년 프랑스 남서쪽 끝, 스페인 국경 가까운 바닷가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바스크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스위스 출신의 기술자로 기계를 발명하던 사람이었어요. 가족은 곧 파리로 옮겼지만, 어머니가 불러 주던 스페인과 바스크의 노래는 평생 그의 음악에 남았습니다. 기계를 사랑한 아버지의 영향도 정밀한 그의 음악에 스며들었다고들 하지요.
음악원과 로마 대상 소동
라벨은 십 대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고, 가브리엘 포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과 피아노곡 「물의 유희」를 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젊은 작곡가들의 꿈인 로마 대상에서는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1905년에는 이미 이름난 작곡가가 된 그가 예선에서조차 탈락하자 큰 소동이 일었어요. 심사가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음악원 원장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피아노에서 관현악으로
라벨은 피아노곡을 먼저 쓰고 그것을 관현악으로 옮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미 거위」, 「쿠프랭의 무덤」 같은 곡이 그랬지요. 그는 악기마다 낼 수 있는 소리를 꿰뚫고 있어, 다른 작곡가의 곡도 관현악으로 훌륭하게 옮겼습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관현악으로 옮긴 판은 오늘날 원곡보다 더 자주 연주될 정도예요.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몸이 작고 약해 군대에 받아 주지 않던 라벨은 끈질기게 자원해 마침내 군용 트럭 운전병으로 전선에 나갔습니다. 전쟁 동안 그는 가까운 친구들을 잃었고, 1917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이 시절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을 쓰며, 곡마다 전쟁에서 죽은 친구 한 사람씩을 기려 바쳤습니다.
몽포르라모리의 집과 미국 여행
1921년 라벨은 파리 서쪽 작은 마을 몽포르라모리에 집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방들을 기계 장난감과 자잘한 물건으로 가득 채운 그 집에서 그는 조용히 일했어요. 1928년에는 넉 달 가까이 미국을 돌며 연주와 지휘를 했고, 재즈를 즐겨 들었다고 전합니다. 같은 해 「볼레로」가 초연되었지요.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마지막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부탁으로, 라벨은 왼손만으로 치는 피아노 협주곡을 썼습니다. 비슷한 무렵 두 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도 완성했어요. 그러나 1930년대 초부터 뇌의 병이 깊어져, 머릿속에 음악이 있어도 그것을 악보로 적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37년 수술을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그해 12월 예순둘로 세상을 떠났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볼레로」음악 여행 마지막 열다섯째 정거장. 같은 선율을 악기만 바꿔 가며 키워 가는 곡이에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젊은 라벨의 느리고 우아한 피아노곡.
함께한 사람들
- 가브리엘 포레음악원의 스승. 제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었어요.
- 이다 루빈시테인「볼레로」를 부탁한 무용가.
- 파울 비트겐슈타인한 팔을 잃은 뒤에도 연주를 이어 간 피아니스트.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라벨은 전쟁에서 죽은 친구들을 위해 곡을 썼고, 전쟁에서 팔을 잃은 피아니스트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왼손만을 위한 협주곡을 썼습니다. 전쟁은 끝나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래 남지요.
전쟁이나 사고로 몸의 일부를 잃은 사람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사회와 예술은 무엇을 함께 바꾸어 갈 수 있을까요?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라벨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