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비제의 초상

작곡가 · 낭만

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

생애
1838–1875
태어난 곳
프랑스 파리
시대
낭만

비제 이야기

1933년, 파리 음악원 도서관의 서고에서 오래된 악보 한 묶음이 발견됩니다. 열일곱 살 학생이 쓴 교향곡이었어요. 작곡가는 이 곡을 한 번도 무대에 올리지 않았고, 거의 여든 해 동안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습니다. 2년 뒤 처음 연주된 이 밝은 교향곡의 주인은 조르주 비제였어요.

음악가 집안의 신동

비제는 1838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노래 선생님, 어머니는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인 그는 열 살이 채 되기 전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피아노를 무척 잘 쳐서, 리스트도 그의 연주 솜씨를 칭찬했다고 전해요.

로마 대상

음악원에서 그는 오페라 작곡가 프로망탈 알레비에게 작곡을 배웠고, 열일곱 살에 앞의 그 교향곡을 썼습니다. 1857년에는 젊은 작곡가들의 꿈인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 로마에서 몇 해를 보냈어요. 그곳의 햇빛과 풍경을 무척 사랑해, 파리로 돌아가기 싫어했다고 해요.

성공하지 못한 오페라들

파리로 돌아온 비제는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863년 「진주조개잡이」를 비롯한 그의 오페라들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는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의 곡을 피아노로 옮기고, 레슨을 하며 고되게 일해야 했습니다.

1869년 그는 스승 알레비의 딸 주느비에브와 결혼했습니다.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파리를 지키는 국민군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1872년에는 연극 「아를의 여인」을 위한 음악을 썼는데, 연극은 실패했지만 그 음악으로 만든 모음곡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스페인을 가 보지 않은 「카르멘」

「카르멘」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로, 스페인 세비야가 무대입니다. 그런데 비제는 스페인에 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는 스페인 노래책과 악보를 구해 공부하며 하바네라와 세기디야 같은 스페인풍 춤의 리듬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상상으로 그린 스페인이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떠올리는 스페인 음악의 한 모습이 되었지요.

「카르멘」

1875년 3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자유분방한 담배 공장 여공, 질투에 눈먼 군인, 무대 위의 죽음. 가족 관객이 많던 극장에서 이 이야기는 너무 거칠다는 비판을 받았고, 반응은 차가웠어요.

서른여섯의 끝

초연 석 달 뒤인 1875년 6월, 비제는 파리 근교 부지발에서 서른여섯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가을 「카르멘」은 빈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뒤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어요. 비제는 그 성공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카르멘」 중 '하바네라'반음씩 미끄러지는 선율로 카르멘이 처음 자기를 소개하는 노래예요.

이 노래를 들은 뒤 「카르멘」의 서곡과 '투우사의 노래'도 찾아 들어 보세요. 축제처럼 밝은 행진과 어두운 운명의 동기가 한 오페라 안에서 어떻게 부딪치는지 느낄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프로망탈 알레비음악원의 스승이자 장인.
  • 샤를 구노젊은 비제가 존경하고 많이 배운 선배 작곡가.
  • 셀레스틴 갈리마리에「카르멘」의 첫 카르멘. 비제와 함께 '하바네라'를 다듬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비제의 「카르멘」은 처음에 너무 거칠고 부도덕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자유를 노래하는 강렬한 여성 주인공으로 사랑받습니다. 한 시대에 불편했던 이야기가 다음 시대에 공감을 얻는 일은 흔하지요.

어떤 이야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대에서 밀려날 때, 그 불편함은 작품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그 시대 사회의 문제일까요?

비제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비제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