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만 이야기
1834년, 라이프치히의 한 젊은이가 음악 잡지를 만듭니다. 잡지에는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사람이 번갈아 글을 쓰는데, 사실 둘 다 한 사람이었어요. 열정적인 자신과 꿈꾸는 자신을 두 인물로 나누어 쓴 것이지요. 로베르트 슈만입니다.
서점 집 아들
슈만은 1810년 독일 츠비카우에서 서점과 출판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책과 문학을 무척 좋아해, 평생 그의 음악에는 소설과 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어요. 어머니의 바람으로 라이프치히와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마음은 음악에 가 있었습니다.
다친 손가락
스무 살 무렵 슈만은 법학을 그만두고 라이프치히의 이름난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집에 들어가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요. 그런데 몇 해 뒤 오른손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그 꿈을 접어야 했어요. 그 뒤 그는 작곡과 음악 글쓰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 무렵 그는 「나비」, 「사육제」, 「크라이슬레리아나」 같은 피아노곡을 잇달아 썼습니다. 짧은 장면들이 가면무도회처럼 이어지는 곡들로, 곡마다 소설 속 인물과 친구들의 모습이 숨어 있지요.
잡지와 젊은 작곡가들
1834년 그가 만든 음악 잡지는 낡은 취향을 비판하고 새로운 음악을 알렸습니다. 쇼팽의 초기 작품을 크게 반겨 소개한 것도 슈만이었어요. 훗날 1853년에는 무명의 스무 살 청년 브람스를 세상에 소개하는 글을 써, 그의 앞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클라라와 노래의 해
스승 비크의 딸 클라라는 어려서부터 유럽에 이름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사랑에 빠졌지만, 비크는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어요. 두 사람은 법정 다툼 끝에 1840년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해 슈만은 백 곡이 넘는 노래를 쏟아 냈는데, 그래서 1840년을 '노래의 해'라고 부르지요. 그 뒤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실내악도 이어졌습니다.
어두운 끝
슈만은 젊을 때부터 마음의 병을 앓았습니다. 1850년 뒤셀도르프의 음악 감독이 되었지만 지휘자로서는 어려움을 겪었고, 병은 점점 깊어졌어요. 1854년 2월 그는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가 구조되었고,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856년, 마흔여섯의 나이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클라라는 그 뒤로도 사십 년 넘게 연주하며 남편의 음악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음악 여행 여덟째 정거장. 어른이 돌아본 어린 시절의 꿈이에요.
-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클라라를 위해 처음 쓴 환상곡을 바탕으로 만든 협주곡.
짧은 피아노 소품과 큰 협주곡을 이어 들으면, 슈만이 작은 장면을 그리는 데에도, 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데에도 늘 시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클라라 슈만아내이자 당대에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작곡가. 남편의 음악을 무대에서 가장 많이 알린 사람.
- 프리드리히 비크피아노 스승이자 장인. 결혼을 반대해 법정까지 간 사람.
- 요하네스 브람스슈만이 세상에 소개한 젊은 작곡가. 슈만이 병원에 있는 동안 클라라 가족을 곁에서 도왔어요.
- 펠릭스 멘델스존라이프치히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슈만은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았고, 그 시절에는 그 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날 의학은 많이 발전했지만,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편견과 마주하지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치료받고 자기 일을 이어 갈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먼저 바꾸어야 할까요?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슈만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