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슈윈 이야기
1910년, 뉴욕의 한 아파트에 중고 피아노가 들어옵니다. 부모는 큰아들 아이라가 배우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피아노가 창문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앞에 앉아 유행가를 쳐 낸 것은 열두 살 동생이었습니다. 조지 거슈윈의 음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전해요.
이민자의 아들
거슈윈은 1898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따라 이 동네 저 동네로 이사를 다녔고, 소년은 거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자랐어요. 공부보다 밖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던 아이였다고 전합니다. 피아노를 만난 뒤 그는 좋은 선생님에게 쇼팽과 리스트, 드뷔시를 배우며 빠르게 실력을 키웠습니다.
틴 팬 앨리의 소년
열다섯 살에 거슈윈은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의 악보 출판사 거리 '틴 팬 앨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게에 앉아 손님들에게 새 노래를 쳐 주며 악보를 파는 일이었어요. 하루 종일 수많은 노래를 치며 그는 대중음악의 말투를 손끝으로 익혔습니다.
곧 그는 직접 노래를 쓰기 시작했고, 1919년 노래 「스와니」가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뒤 형 아이라가 가사를 쓰고 조지가 곡을 붙이는 형제 콤비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잇달아 내놓았어요. 형제의 노래 가운데 여러 곡은 훗날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이 되어, 지금도 재즈 클럽에서 자주 들립니다. 대중의 노래와 재즈, 그리고 클래식이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지요.
공연장으로
1924년 「랩소디 인 블루」로 거슈윈은 재즈의 말투를 클래식 공연장에 크게 들여왔습니다. 이듬해에는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를, 1928년에는 파리 여행에서 얻은 인상으로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을 썼지요. 이 곡에는 진짜 자동차 경적까지 들어가, 파리 거리를 걷는 미국인 여행자의 들뜬 걸음과 향수를 함께 그려 냅니다. 그는 유럽 음악가들에게 작곡을 더 배우고 싶어 했고, 파리에서 라벨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가 정중히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요.
「포기와 베스」
1935년 거슈윈은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의 삶을 그린 이 오페라에는 「서머타임」 같은 노래가 들어 있어요. 처음에는 흥행이 좋지 않았지만,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작품은 흑인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아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공연되었어요.
너무 이른 끝
거슈윈은 1930년대 후반 할리우드로 옮겨 영화 음악을 썼습니다. 그런데 1937년 심한 두통과 이상한 증상이 이어졌고, 뇌종양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그는 수술 뒤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 아이라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동생의 악보와 기록을 정리하며 그의 음악을 지켰어요.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랩소디 인 블루」음악 여행 열넷째 정거장이에요. 클라리넷의 글리산도로 시작합니다.
이 곡을 들은 뒤에는 그가 거리에서 익힌 노래의 말투와 공연장의 큰 형식이 어떻게 한데 섞였는지 다시 떠올려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형 아이라 거슈윈동생의 노래에 가사를 쓴 평생의 짝.
- 폴 화이트먼「랩소디 인 블루」를 부탁하고 초연한 악단 지휘자.
- 퍼디 그로페「랩소디 인 블루」를 악단 악기에 맞게 옮긴 편곡자.
함께 생각해 볼 질문
거슈윈은 흑인 음악가들이 키워 온 재즈와 블루스의 말투를 빌려 큰 성공을 거두었고, 「포기와 베스」로 흑인 공동체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 작품을 두고 지금도 흑인의 삶을 존중했다는 평가와 고정된 이미지로 그렸다는 비판이 함께 나오지요.
다른 공동체의 이야기를 바깥 사람이 작품으로 만들 때, 그 공동체를 존중하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거슈윈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