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 바로크

요한 파헬벨

Johann Pachelbel

생애
1653–1706
태어난 곳
독일 뉘른베르크
시대
바로크

파헬벨 이야기

1680년, 독일 아이제나흐의 한 교회. 마을 악사 암브로지우스 바흐의 갓난 딸이 세례를 받는 자리에 대부로 선 젊은 오르가니스트가 있었습니다. 다섯 해 뒤 이 집에서는 막내아들 요한 제바스티안이 태어나지요. 대부였던 오르가니스트는 훗날 이 아이의 큰형을 가르치게 됩니다. 요한 파헬벨입니다.

뉘른베르크의 소년

파헬벨은 1653년 독일 남부의 도시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공부 모두 뛰어나, 근처 알트도르프의 대학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일 년도 채 안 되어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 뒤 레겐스부르크의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이어 갔지요.

빈과 아이제나흐

1673년 무렵 그는 빈으로 가서 슈테판 대성당의 보조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음악을 익혔어요. 1677년에는 아이제나흐 궁정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그곳에서 바흐 집안과 친해졌습니다. 아이제나흐에 머문 것은 일 년 남짓이었지만, 이 인연은 오래 이어졌어요.

에르푸르트의 열두 해

1678년 파헬벨은 에르푸르트의 프레디거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열두 해 동안 일했습니다. 교회 예배에서 회중이 부를 찬송가의 선율을 오르간으로 미리 들려주는 곡, 코랄 전주곡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암브로지우스 바흐의 큰아들 요한 크리스토프를 제자로 가르쳤습니다. 훗날 부모를 잃은 어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맡아 음악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이 큰형이었지요.

흑사병의 해

1683년 에르푸르트에 흑사병이 돌았습니다. 파헬벨은 첫 아내와 갓난아들을 잃었어요. 그해 그는 죽음을 묵상하는 찬송가 선율에 붙인 변주곡집을 펴냈습니다. 이듬해 그는 다시 결혼해 일곱 아이를 두었고, 아들 가운데 둘은 음악가가 되었어요. 그중 한 아들은 훗날 바다 건너 아메리카로 가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다고 전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1690년 이후 그는 슈투트가르트와 고타에서 잠시 일했습니다. 그리고 1695년 고향 뉘른베르크의 성 제발트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돌아왔어요. 그곳에서 1699년 하프시코드 변주곡집 「아폴로의 육음음계」를 펴냈고, 저녁 예배 노래인 마니피캇을 위한 오르간 푸가를 아흔 곡 넘게 썼습니다. 그는 1706년 뉘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캐논」바이올린 세 대가 같은 선율을 두 마디씩 늦게 따라 부르고, 그 아래에서 두 마디짜리 저음이 스물여덟 번 되풀이되는 곡이에요.

이 곡이 언제 쓰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옛 악보에는 「캐논」 뒤에 빠른 춤곡 '지그'가 짝으로 붙어 있어요.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1919년에야 처음 악보로 출판되었고, 1960년대 후반 녹음이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기 시작했어요. 들을 때는 저음이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고 있는지 세어 보다가, 그 위에서 바이올린들이 점점 더 촘촘한 음표로 변해 가는 것을 따라가 보세요.

함께한 사람들

  • 암브로지우스 바흐아이제나흐의 악사로, 파헬벨이 그 딸의 대부가 된 친구.
  •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에르푸르트에서 배운 제자이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큰형.
  • 빌헬름 히에로니무스 파헬벨아버지의 뒤를 이은 오르가니스트 아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파헬벨은 살아 있을 때 교회 오르가니스트이자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캐논」 한 곡으로만 기억됩니다. 그가 가르친 제자를 거쳐 바흐에게 이어진 영향은 눈에 잘 띄지 않지요.

한 사람의 업적은 가장 유명한 결과물로 판단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가 가르치고 길러 낸 사람들까지 함께 보아야 할까요? 여러분 주변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길러 낸 사람은 누구인가요?

파헬벨의 곡

파헬벨의 숨은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파헬벨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