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케리니 이야기
1770년 무렵, 마드리드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 스페인 국왕의 동생이 머무는 작은 궁정에 이탈리아에서 온 첼리스트가 들어섭니다. 그는 이곳에서 현악기 다섯 대를 위한 곡을 끝없이 써 내려가게 돼요.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그리고 첼로가 하나가 아니라 둘. 루이지 보케리니입니다.
루카의 첼로 소년
보케리니는 1743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루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음악가였어요.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첼로를 배웠고, 실력이 늘자 로마로 가서 더 공부했습니다. 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벌써 무대에서 연주했다고 전해요.
빈과 파리의 무대
십대의 보케리니는 아버지와 함께 빈의 궁정 극장 악단에서 일했습니다. 빈과 루카를 몇 차례 오가며 연주와 작곡을 이어 갔지요. 1767년 무렵에는 파리로 가서 첼로 연주로 이름을 알렸어요. 당시 첼로는 주로 저음을 받치는 악기로 여겨졌는데, 그는 첼로로 높은 음역의 선율을 화려하게 연주해 청중을 놀라게 했습니다. 파리의 출판사들이 그의 실내악을 펴내면서, 그의 곡은 그가 가 보지 못한 도시에서도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으로
1768년 무렵 보케리니는 스페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1770년, 국왕 카를로스 3세의 동생 돈 루이스 왕자를 섬기는 음악가가 되었어요. 왕자는 궁정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저택에서 지냈고, 보케리니도 그곳에서 왕자의 작은 실내악단을 위해 곡을 썼습니다. 큰 극장도, 많은 청중도 없는 곳이었지요.
첼로 두 대의 오중주
그곳에서 보케리니는 자기만의 형식을 키웠습니다. 보통의 현악 사중주에 첼로를 한 대 더 넣은 현악 오중주예요. 첼리스트였던 그는 한 대의 첼로로 저음을 받치고, 다른 한 대로는 높은 음역에서 노래하게 했어요. 그는 이런 오중주를 백 곡 넘게 남겼습니다. 1771년에 쓴 오중주의 셋째 악장 '미뉴에트'는 지금 그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곡이 되었지요. 이 미뉴에트는 1955년 영국 영화 「레이디킬러」에서 악당들이 연주하는 척하는 곡으로 쓰이는 등, 영화와 광고에 자주 등장하며 귀에 익은 선율이 되었습니다.
마드리드의 밤거리
보케리니의 음악에는 스페인의 소리도 스며들었습니다. 1780년에 쓴 오중주 「마드리드 거리의 밤 음악」은 밤거리의 종소리, 거리의 악사, 군대의 귀영 나팔을 악기로 흉내 내요. 나중에는 기타가 들어간 오중주에 스페인 춤곡 판당고를 넣기도 했습니다.
쓸쓸한 말년
1785년 돈 루이스 왕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케리니는 그 뒤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실내악 작곡가라는 직함을 얻어 마드리드에서 곡을 보냈고, 스페인 귀족 집안의 후원도 받았어요. 하지만 말년에는 아내와 여러 자녀를 잃고 형편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1805년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1927년에야 고향 루카로 돌아갔습니다.
평음재에서 들을 수 있는 곡
- 현악 오중주 중 '미뉴에트'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반주를 깔고 바이올린이 우아한 선율을 얹는 춤곡이에요.
이 곡을 들을 때는 선율만 따라가지 말고 아래에서 톡톡 튀는 반주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시골 저택의 작은 방에서 다섯 사람이 둘러앉아 연주하던 소리가 그려질 거예요.
함께한 사람들
- 아버지 레오폴도 보케리니첫 첼로 스승.
- 돈 루이스 왕자스페인에서 그를 오래 후원한 국왕의 동생.
-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첼로를 연주했던 프로이센 왕으로, 그에게 작곡가 직함을 준 후원자.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보케리니는 큰 도시의 무대를 떠나 시골의 작은 궁정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첼로 두 대의 오중주라는 자기만의 형식을 키웠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기회를 찾아 큰 도시로 모이지요.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과 경쟁하는 것과 작은 곳에서 자기만의 길을 깊이 파는 것,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에서 더 많이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같은 시대를 산 작곡가
생애가 보케리니의 생애와 10년 넘게 겹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