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상자에서 다시 나타난 비발디
세상을 떠난 뒤 오래 잊혔던 비발디의 악보 수백 곡이 1920년대 이탈리아의 한 학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사이 그를 기억한 사람은 바흐였다.

1920년대 후반, 이탈리아 북부. 한 학교가 건물을 고칠 돈을 마련하려고 오래된 악보 묶음을 팔기로 합니다. 감정을 맡은 음악학자 알베르토 젠틸리는 상자를 열어 보고 숨이 멎을 뻔했어요. 그 안에 안토니오 비발디의 친필 악보가 산더미처럼 들어 있었거든요.
잊힌 붉은 머리 신부
비발디는 살아 있을 때 유럽 곳곳에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였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협주곡집을 암스테르담에서 펴냈지요. 하지만 말년에는 인기가 시들었고, 새 기회를 찾아 빈으로 갔다가 1741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비발디의 이름은 빠르게 잊혔습니다. 사람들은 늘 새 음악을 원했고, 지난 시대의 협주곡은 금세 낡은 것으로 여겨졌어요. 19세기에는 비발디를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를 기억한 사람, 바흐
그런데 그 긴 망각 사이에도 비발디를 붙잡고 있던 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바흐였어요. 젊은 시절 바흐는 비발디의 협주곡을 연구하며 여러 곡을 오르간과 쳄발로 독주곡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남의 곡을 옮겨 적는 것은 그 시절 작곡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었지요.
19세기에 바흐의 음악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자, 학자들은 바흐가 편곡한 곡들의 원작자를 찾다가 비발디라는 이름을 다시 만났습니다. 바흐 덕분에 비발디의 이름이 다시 불리기 시작한 셈이에요.
두 아버지의 이름을 딴 컬렉션
다시 1920년대로 돌아가 볼까요. 젠틸리가 찾아낸 악보는 너무 귀중해서 국립 도서관이 사들여야 했지만,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토리노의 두 부자, 로베르토 포아와 필리포 조르다노가 차례로 돈을 냈어요. 그런데 이 악보 묶음의 나머지 절반은 다른 친척 집안에 따로 흩어져 있었고, 젠틸리는 몇 해에 걸쳐 그것까지 찾아내 하나로 모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 악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토리노 국립 도서관의 비발디 악보는 '포아 컬렉션', '조르다노 컬렉션'이라고 불려요. 그 속에서 수많은 협주곡과 오페라, 교회 음악이 다시 빛을 보았고, 비발디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녹음된 바로크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듣는 「겨울」의 느린 악장도 그렇게 되살아난 음악의 하나예요. 바이올린이 따뜻한 선율을 부르는 동안 다른 현악기들은 손가락으로 줄을 퉁겨 창밖의 빗방울 소리를 냅니다. 악보에 붙은 시는 이 장면을 난롯가에서 편히 쉬는 동안 밖에서는 비가 모든 것을 적시는 모습으로 그려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비발디의 악보는 학교가 건물 수리비를 마련하려고 내놓지 않았다면, 그리고 부자 두 사람이 돈을 내지 않았다면 흩어지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귀중한 옛 기록과 문화재가 돈이 없어 낡아 가거나 개인의 손에 팔려 나가곤 하지요.
모두의 유산이 될 만한 기록을 지키는 일을 몇몇 부자의 선의에 맡겨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까요?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비발디 이야기 읽기 →